제주 성산 온평리 환해장성, 바다와 돌에 새겨진 조선시대 해안 방어의 흔적
아침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시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잔잔한 파도소리 사이로 바람이 길게 흘렀고, 바다와 맞닿은 돌담이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온평리 환해장성’이라 적힌 표지석 옆에는 짙은 회색의 현무암 성벽이 굽이치며 바다 쪽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돌마다 미세한 굴곡과 바다 소금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해안 방어 성곽으로, 지금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새벽의 공기 속에 남아 있는 바다 냄새와 돌의 냉기가 어우러져, 마치 시간의 문턱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1. 바닷가 마을 끝에서 만나는 옛 성벽
온평리 환해장성은 성산일출봉에서 남쪽으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온평리 해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온평리 환해장성’을 입력하면 바닷가 공터 주차장으로 안내됩니다. 바다를 마주 보고 서면 왼쪽으로 길게 이어진 검은 돌담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차장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면 장성의 중심부에 닿습니다. 길 옆에는 억새와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지만, 돌담의 윤곽은 또렷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반복하며, 성곽이 바다와 하나의 호흡을 이루는 듯했습니다. 마을 사람 몇 분이 해안을 따라 걷는 모습이 보였고, 그 풍경이 오래된 일상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2. 바다와 맞닿은 돌의 구조
환해장성은 해안선을 따라 길게 쌓인 돌성으로, 곳곳에서 당시의 축성 방식이 남아 있습니다. 현무암을 거칠게 다듬어 쌓은 형태로, 아래쪽은 큰 돌로 기초를 세우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촘촘히 쌓아 올렸습니다. 높이는 2미터 남짓, 두께는 약 1.5미터 정도로 보입니다. 돌 사이에는 시멘트나 흙 대신 작은 자갈을 끼워 넣은 형태로, 바닷바람에도 구조가 단단히 유지됩니다. 벽면의 일부는 해풍에 닳아 돌이 부드럽게 마모되어 있었고, 해조류가 희미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손으로 돌을 만지면 차가운 습기와 함께 거친 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단단한 구조가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파도를 버텨온 이유임을 실감했습니다.
3. 역사 속 해안 방어의 흔적
온평리 환해장성은 조선시대 중기, 왜구의 침입이 잦던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환해(環海)’라는 이름처럼, 제주의 해안을 따라 연속적으로 설치된 성곽 중 한 구간이 이곳입니다. 당시 장성 위에는 초소가 세워져 있었고, 병사들이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안내문에는 성산포와 남원 사이를 잇는 방어선의 중심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이 위치가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점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잔잔한 바다이지만, 그 아래에 숨겨진 역사의 긴장감이 여전히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돌과 파도가 만나며 내는 소리가 그 시절의 경계음처럼 들렸습니다.
4. 단정히 보존된 현장과 관람 환경
성곽 주변은 울타리로 둘러져 있지 않아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는 ‘국가유산 온평리 환해장성’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으며, 그 아래에 간략한 축성 연도와 복원 과정을 소개한 설명문이 있습니다. 바닥은 흙길이지만 물기가 없어 걸음이 편했고, 바람이 세게 불 때를 대비해 손잡이용 나무 난간이 일부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변에는 벤치가 두어 개 마련되어 있으며, 바다 쪽으로는 조명이 설치되어 해질녘에도 이동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상업 시설은 없지만, 마을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잡초를 정리해두어 깔끔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공적인 복원보다 자연스러운 형태를 유지한 점이 오히려 이 장소의 품격을 높여주었습니다.
5. 성산 일대와 함께 즐기는 역사 코스
온평리 환해장성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면 좋습니다. 두 장소 모두 바다를 중심으로 한 방어의 상징이자,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입니다. 이어 ‘섭지코지’로 이동해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장성에서 이어진 제주의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점심이나 휴식을 원한다면 인근 ‘온평포구’ 주변의 어촌식당들이 제격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해물뚝배기를 먹는 동안, 조금 전 본 돌성의 풍경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또, 온평리 마을 안쪽에는 ‘해녀의 집 전시관’이 있어 이 지역의 해양 생활문화도 함께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루 코스로 역사와 생활, 자연을 모두 엮은 여정이 완성되었습니다.
6. 관람 시 유용한 팁과 느낀 점
환해장성은 오전보다는 오후 늦은 시간에 방문하면 좋습니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성곽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풍경이 한층 깊어집니다. 해안가 바람이 강하니 얇은 겉옷이나 모자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돌 위로 올라서거나 밟는 행동은 금지되어 있으며, 성곽의 형태를 지키기 위해 일정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바다를 배경으로 성곽을 비스듬히 잡으면 가장 입체적인 구도가 나옵니다. 조용히 서서 돌담 너머의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속에 남은 세월의 결이 느껴집니다. 인간이 쌓은 구조물이 자연의 일부로 흡수된 풍경이었고, 그 조화가 제주의 시간감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마무리
온평리 환해장성은 돌과 바람, 바다가 함께 만든 제주의 역사였습니다. 단단한 돌벽은 수백 년의 풍파를 견뎌왔고, 지금은 그 자체로 평화를 상징하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바다의 색과 돌의 빛이 하나로 섞여, 인간의 흔적과 자연의 흐름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돌아서는 길, 석양빛이 돌담 위에 내려앉으며 장성을 금빛으로 물들였습니다. 그것이 마치 과거의 신호불 대신 평화를 알리는 불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돌 하나에도 제주의 기억이 남아 있었고, 그 기억은 여전히 바람을 타고 바다 위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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